파업가부터 다만세까지… 민중가요를 보면 시대가 보인다

입력 2023-08-22 17:00  



어쩌다 보니 20년 가까운 직장 생활을 우리나라 각종 집회와 시위의 메카인 시청과 광화문 주변에서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사~랑도 명~예도’를 들으며 출근을 하고, ‘바위 처~럼 살아가보자’를 들으며 회의를 하기도 한다. 업무적으로 노동사안을 많이 다루는 탓에 파업이나 집회 현장에서 불리는 민중가요들에 익숙한 편이기도 하다.

노동, 통일, 인권,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사회 운동과정에서 불리는 노래들을 총칭하는 이른바 민중가요라고 불리는 장르의 노래들은 그 기원을 동학농민운동 시절 전봉준을 추모하던 ‘새야 새야’로 보는 견해가 있을 만큼 만만치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주로 독재타도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주로 담아내던 민중가요들은 1980년대 후반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큰 변곡점을 맞이한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민중가요들의 가사와 멜로디를 보면 그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노동문제들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하나 되어 우리 맞선다
승리의 그 날까지
승리의 그 날까지!

1987년 민주화 항쟁을 기점으로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의 주된 의제가 민주화에서 노동으로 옮겨가던 시기에 민중가요 판에 큰 변화를 가져온 노래가 ‘흩어지면 죽는다’의 강렬한 도입부로 익숙한 김호철 작사작곡의 ‘파업가’이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노동조합이 기록적으로 늘어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군사정권 시절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정권 하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파업을 한다는 것은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함을 의미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노동자들에게 강한 단결을 강조하며 노조 깃발 아래 뭉칠 것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 노래는 오늘 날에도 각종 노동관련 집회의 마무리를 하는 곡으로 종종 쓰이고 있다.

백골단 구사대 몰아쳐도
꺾어 버리고 하나되어 나간다
노동자는 노동자다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
너희는 조금씩 갉아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
아아~ 우리의 길은 힘찬 단결투쟁 뿐이다

1989년에 세상에 등장한 백무산 작시, 김호철 작곡의 ‘단결투쟁가’를 보더라도, 아직 노동자들이 느끼는 세상은 민주화 항쟁 이전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노래는 보통사람들을 표방하는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여전히 노동운동은 백골단으로 대표되는 공권력과 구사대로 상징되는 사용자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다는 현실을 강조하며, 노동자들의 연대와 전투적인 대응을 통한 노동운동이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단결만이 살길이요 노동자가 살길이요
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아, 민주노조 우리의 사랑 투쟁으로 이룬 사랑
단결 투쟁 우리의 무기
너와 나, 너와 나, 철의 노동자

지금까지 수많은 노동집회에서 단골로 불리고 있는 ‘철의 노동자’이다. 이 노래의 원작자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으로 상업적으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둔 가수 안치환이고, 안치환이 1990년 개봉한 독립영화 ‘파업전야’의 OST를 준비하면서 닫힌 공장의 녹슨 철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가 바로 이 노래란 사실은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노래에 등장하는 민주노조라는 단어 때문인지 이 노래는 1990년 출범한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출범식에 쓰이게 되었고, ‘철’의 노동자란 가사 때문에 그 후에도 특히 금속노조 관련 집회에서 빠짐없이 불리고 있다.

칠흑 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워~워~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민중 락(Rock)밴드 천지인이 1993년 발표한 ‘청계천 8가’이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민중가요에 락이 도입되기도 하는 등 투쟁 일변도의 민중가요계는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된다. 문민정부가 시작되던 1993년 무렵 노래인 이 노래 가사 속에는 ‘투쟁’이나 ‘해방’과 같은 거대 담론 대신 지금은 사라져버린 청계천 고가 아래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노동하며 살아가고 있는 핏발 솟은 리어카꾼이, 어느 맹인부부 가수가, 횡단보도를 정신없이 건너 다니며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여전히 가난하기만 한 물샐 틈 없는 인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노래방 기계에도 등록되어 있다니 회식 일정이 잡혀 있는 분이라면 한 번 시도해 보시길.

때리지 마세요 욕하지 마세요 내 돈을 돌려주세요
내 몸이 아파 마음이 아파 여기서 도망치고 파
코리아 코리안 드림 코리아 코리안 드림

1990년대 후반 시작된 외환위기로 인해 한국 사회는 모든 기존 질서와 가치가 한번 붕괴되는 경험을 겪었고, 2000년대 부터는 노동인력 구조에서도 이전과 달리 외국인 노동자들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2005년에 발표된 연영석 작사작곡의 ‘코리안 드림’을 보면, 외환위기를 겪어 내고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는 한국 경제 울타리 안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떤 세상을 꿈꾸며 진입했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감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폐지된 개그콘서트에서 블랑카가 ‘사장님 나빠요~’라는 유행어를 남긴 것도

일하는 회사 따로 월급 받는 회사 따로
원청사장 하청사장 하청 또 하청
진짜 사장이 나와라! 우리의 노동은 가짜 노동이 아냐
진짜 사장이 나와라! 용역하청 바지사장 다 걷어치우고 나와라

2010년경 이후 노동분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안은 사내하청, 불법파견, 위탁과 같은 간접고용 문제이다. 2014년 간접고용노동자 조직화와 캠페인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진짜 사장이 나와라’는 제목에서부터 간접고용 문제의 핵심을 정통으로 지적하고 있다. 고용과 사용이 분리되어 운용되는 수많은 형태의 간접 고용 문제의 핵심을 이 노래제목보다 더 촌철살인으로 표현할 수 있나 싶다. 간접 고용자들과 관련한 집회에서라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는 노래이다.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우리나라 대표 걸그룹의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가 집회현장에서 불릴 것이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의 본관 점거 농성 당시 학생들이 경찰들과 대치한 상황에서 앳된 목소리로 불렀던 소녀시대의 노래는 결연하고 엄숙한 그 어떤 투쟁가 보다도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걸그룹의 노래 가사가 어쩜 그 상황에 그리 찰떡같이 맞아 떨어졌는지. ‘그 날이 오면’의 ‘그 날’과 ‘다시 만난 세계’의 ‘세계’가 혹시 같은 세상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화여대 농성에서 민중가요로 첫 자리매김을 한 이후 현재까지도 특히 젊은 세대가 많이 참여한 집회 현장에서는 심심치 않게 불리고 있다고 한다.

수많은 집회현장에서 집회 대오 안의 참석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역할을 하는 한편, 집회 대오 밖의 행인에게는 살벌한 가사들과 웅장한 멜로디로 인해 다소간의 이질감을 느끼게 하던 민중가요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일반 대중의 눈으로 바라본 현실의 문제를 담아가고 있는 것 같다. AI다 디지털이다 해서 노동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노동운동의 주체와 방행성도 그에 맞춰 변하고 있는 세상이다. 앞으로의 민중가요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어떠한 내용들을 담아내면서 그 시절의 노동을 담아낼지 사뭇 궁금해진다.

이세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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